인공지능(AI)은 21세기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입니다.
특히 챗GPT 등장 이후 전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AI 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도 AI 기술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산업 육성을 넘어, AI는 경제 성장, 안보, 교육, 복지, 행정 등 전 분야에서 혁신을 유도하는 중추 역할을 하고 있죠.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각국은 경쟁적으로 AI 전략을 수립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며, 관련 법과 인재 양성 정책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AI는 이제 ‘민간 주도의 기술’이 아니라, ‘국가 주도의 전략 자산’이 되었습니다. 누가 먼저 뛰어난 AI 인재를 확보하고, 강력한 컴퓨팅 인프라를 갖추며, 윤리·법 제도까지 빠르게 정비하느냐가 곧 기술 주도권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은 물론, 한국, 일본,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등도 AI 선도국이 되기 위한 경쟁에 돌입한 상태입니다. 본 글에서는 세계 주요 국가들이 어떻게 AI 기술을 국가 전략 수준에서 지원하고 있는지를 비교하고, 그 안에서 한국의 위치와 앞으로의 과제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AI를 둘러싼 글로벌 구도가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글로벌 주요 국가의 AI 지원 전략: 미국, 중국, 유럽의 경쟁
가장 먼저 주목할 나라는 단연 미국입니다. AI 핵심 기술의 상당수가 미국에서 태동했고, 현재도 오픈AI, 구글 딥마인드, 메타, 엔비디아 등 글로벌 AI 선도 기업들이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2019년 ‘미국 AI 이니셔티브’를 통해 AI를 국가 핵심 전략으로 명시했고, 2023년 바이든 대통령은 AI 안전과 책임성에 대한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공공 AI 사용 가이드라인과 알고리즘 투명성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은 국방과 안보 분야에서도 AI를 활용하기 위한 연구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며, AI 인재 유치를 위한 STEM 비자 정책, 대학 연구 펀딩 확대 등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4년부터는 연방정부 차원에서 ‘AI 리더십 오피스’를 신설해 각 부처의 AI 기술 도입과 활용을 감독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중국입니다. 중국은 2017년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AI 분야 세계 1위를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AI 칩셋 국산화, 데이터 자주권 확보, 산업 전반에 걸친 AI 적용 확대를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으며,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정책과도 연계돼 산업 전반에 AI를 융합하고 있습니다. 특히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화웨이 등 대형 테크 기업들이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며 AI 연구소, 슈퍼컴퓨팅 센터, AI 대학 설립 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도시 단위의 스마트시티, 얼굴인식 기반 보안 시스템, AI 교통 시스템 등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상용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GPT형 언어모델인 ‘어얼모(Ernie)’를 비롯해 자체적인 대규모 언어모델 생태계 구축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기술 개발 자체보다는 윤리, 규제, 공공 활용 중심으로 전략을 차별화하고 있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AI(Trustworthy AI)’를 핵심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세계 최초로 AI 법안(AI Act)을 입법화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 법안은 위험도에 따라 AI 시스템을 구분하고, 고위험 AI의 경우 사전 등록, 감시, 데이터 투명성 등을 의무화합니다. EU는 AI 기술의 자유로운 발전도 중요하지만, 기본권 침해, 편향, 사생활 침해 등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먼저 마련하는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AI 디지털 허브’, ‘AI Testing and Experimentation Facilities’ 등을 통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AI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으며, ‘호라이즌 유럽’ 프로젝트를 통해 연구개발 자금도 대거 투입하고 있습니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의 AI 전략
한국은 2019년 ‘AI 국가전략’을 발표하며 2030년까지 세계 3대 AI 강국 진입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를 위해 데이터, 알고리즘, 인재 등 세 가지 핵심 요소에 대한 중장기 투자 계획을 수립했고, 특히 AI 반도체, K-클라우드, 디지털플랫폼정부 등 국가 차원의 인프라 전략도 함께 추진 중입니다. 2023년부터는 ‘초거대 AI 얼라이언스’를 통해 국내 대기업과 스타트업, 연구기관 간 협력을 촉진하고 있으며, AI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대학 및 직업훈련 지원도 강화되고 있습니다. 카이스트, 포스텍, 서울대 등 주요 대학에는 AI 대학원과 연구소가 설치되었고, 과기정통부와 산업부는 매년 AI 산업에 수천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공 행정에 AI를 접목해 민원 예측, 행정 문서 자동화, 헬스케어,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 시범 적용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소사이어티 5.0’이라는 개념 아래 AI 기술을 사회문제 해결 도구로 활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IoT를 결합해 고령화, 인구 감소, 농업 노동력 부족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며, 특히 AI 로봇, 헬스케어, 물류 자동화 분야에 많은 예산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2022년 ‘AI 전략 2022’를 통해 AI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산업계와 학계 협업 체계를 강화했습니다. 일본은 미국, 유럽과의 기술 협력에도 적극적이며, AI 윤리 기준과 데이터 국제표준을 맞추는 데도 힘쓰고 있습니다. 또한 일본은 인간 중심의 AI(Human-Centered AI)를 표방하며, 문화적·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방향의 기술 개발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작은 국토와 인구에도 불구하고, 정부 주도의 ‘스마트 네이션 전략’ 아래 AI를 국가 경쟁력의 중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AI 싱가포르’라는 전담 기관을 설립해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이 공동으로 AI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으며, AI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 고급 인재 유치, 실증 테스트베드 제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특히 AI를 행정 서비스와 교육, 교통, 환경 분야에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AI 윤리 가이드라인’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해 AI 활용의 투명성과 신뢰성 확보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 내 AI 거점 국가로 빠르게 성장 중이며, 다국적 기업의 AI 연구센터 유치에도 성공하고 있습니다.
AI 시대의 기술 주권 경쟁과 한국의 과제
AI 기술은 단순한 정보기술의 진보를 넘어, 향후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열쇠입니다. 특히 대규모 언어모델, 초거대 AI, 생성형 AI 기술이 각광받으면서 단순한 알고리즘 개발을 넘어, AI를 둘러싼 인프라(데이터, 컴퓨팅 자원), 인재 양성, 윤리 체계, 국제 협력 등이 복합적으로 요구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처럼 거대 자본과 시장을 가진 국가들은 민간 주도 생태계와 정부 전략이 맞물려 빠르게 AI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는 반면, 중견 국가들은 특화 전략이나 법적 선도(예: EU의 AI 법안)로 틈새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한국도 'AI 반도체', '초거대 AI 모델' 같은 분야에서 경쟁력을 쌓고 있지만, 여전히 AI 인재 부족, 민간-공공 협력 미흡, 국제 표준 대응력 부족 등의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AI는 단발적인 기술 정책이 아닌, 교육·산업·문화·윤리 전반을 아우르는 국가적 거버넌스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따라서 한국은 AI를 단순한 기술개발이 아니라 사회적 수용성, 법제도 정비, 국제 공조 등 ‘종합 전략’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2025년을 기점으로 세계 각국이 AI 법률과 글로벌 거버넌스를 본격적으로 수립해가는 상황에서, 한국 역시 데이터 주권 확보, 윤리 가이드라인 강화, 글로벌 AI 규범 협상 참여 등을 통해 목소리를 키워야 합니다. 또한 민간 기업의 기술력과 공공의 제도 역량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AI 혁신 클러스터’ 구축도 시급합니다.
결국 AI 시대의 패권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 흐름은 점점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각국의 AI 전략은 단순히 경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의 삶의 질, 국가의 미래 산업, 그리고 인류 사회의 윤리적 기준까지 좌우하는 중대한 의제가 되고 있습니다. 기술은 결국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고, 정책은 그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 결정하는 나침반입니다. AI를 ‘국가 미래의 열쇠’로 보는 관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술을 넘어선 통합적 사고와 실행력입니다. 대한민국이 AI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오늘의 선택과 집중이 미래를 결정짓게 될 것입니다.